아프리카여행에 대하여.

챙이 좁고 딱딱한 사파리 모자를 쓰고, 반소매 사파리 쟈켓을 입고, 목에는 새빨간 손수건 을 매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 발사 준비가 완료된 장총을 앞가슴에 받쳐들고 위풍당당하게 떠나는 맹수 사냥 ― 이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사파리(Safari)일 것이다.

지금까지 본 영화와 아프리카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장면들을 섞어서 만든 이 그림은 낭만과 모험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그린 것이다. 우리의 이번 아프리카 여행 일정에도 물론 사파리가 포함되었었다. 무개 사파리 지프를 타고 아프리카의 5대 동물(코끼리, 코뿔소, 사자, 표범, 물소)을 찾아 나서는 스릴 만점의 모험은 아프리카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라는 선전과 함께. 그런데 작은 글씨로 쓴 설명문에서는 이상하게도 사파리 대신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라고 묘사되어 있었다. 게임이라면 보통 야생동물을 지칭하는데, 그렇다면 야생동물을 타거나 야생동물하고 같이 드라이브한다는 소린가. 일단 야생동물보호구역에 들어가면 차에서 내리는 것조차 금한다고 수없이 경고 받았는데 우리처럼 멀리서 온 사람들은 예외인가. 하지만 맹수가 관광객을 알아볼까. 사파리라고 하면 속이 시원했을 것을 왜 알쏭달쏭하게 게임 드라이브라고 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은 이탈라(Itala) 자연보호구역에서 나간 첫 번째 게임 드라이브에서 명백해졌다. 해는 이미 져서 어둑어둑하고 바람이 불며 간간이 비까지 뿌리는 오후 6시, 지붕은 있지만 옆은 툭 터진 사파리 트럭에 올라타고 게임 드라이브를 떠났다. 안내원이 커다란 전지(ash light)를 주면서, 불을 저쪽 숲을 향해서 비치노라면 짐승의 눈에 불빛이 반사될 것이라고 했다. 맙소사! 별로 밝지도 않은 불을 주면서 짐승의 눈을 찾으라니! 반신반의하면서도 우리는 열심히 전지로 숲 속을 뒤졌다. 움푹 패인 길을 차가 덜컹대며 지나갈 때는 불길도 따라 출렁대었고 현기증이 일었다.

“아, 저기!” 하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암흑 속에서 두 개의 다이아몬드가 휘번쩍 빛을 발했다. 짐승의 눈에서 저런 강렬한 광채가 나온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저것은 임팔라(impala)라고 안내원이 가르쳐주었다. “저기요, 저기!” 하는 다급한 소리에 우리는 불을 모두 한쪽으로 몰아 비쳤다. 조랑말처럼 생긴 짐승이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저것은 아프리카 특유의 쿠두(kudu)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암흑 속의 눈을 찾아 세 시간을 다녔다. 스쳐가는줄 알았던 비가 변덕을 부려서 세차게 쏟아지는
바람에 아랫도리는 흠뻑 젖고 너무 추워서 이가 딱딱 마쳤다. 오하이오에서 왔다는 부자는 아예 담요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얼굴을 내밀지도 않았다.

게임 드라이브가 끝났을 때는 모두들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5대 동물은커녕 그 흔한 원숭이도 없더란 불평이 나왔다. 텔레비존의 내이춰(Nature) 프로그램이나 디스커버리(Discovery) 채널을 보면 얼룩말, 기린, 들소, 물소, 사슴, 사자 등 온갖 야생동물이 들판 가득히 뛰어 놀고 사람들은 가까이 가서 사진도 찍고 만지기까지 하던데, 이건 상상하던 사파리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는 것이다.

그들의 실망에 동감하면서도 텔레비존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이처럼 막대한 것에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텔레비존 프로그램은 아무리 다큐멘터리라 하여도 가상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를 보여주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자연이 아니라 목표에 초점을 맞추어서 자연을 다시 배치하고 연결시키고 정돈한 인위적인 예술작품이다. 그런데 우리는 텔레비존의 가상의 세계에 익숙하다 못해 거의 중독이 되어서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혼동하고 있었다. 한가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더위와 모기떼와 외로움과 궁핍을 감수하며 묵묵히 자신들의 일에 열정을 바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는 거들떠보지 않고 그들이 얻은 수확만을 기대하는 것이다. 침팬지 생태를 연구 발표한 짧은 프로그램 뒤에는 아프리카의 밀림 속에서 혼자 연구를 거듭해온 한 과학자의 수 십년 세월이 삼십분으로 압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리는 것이다.

어느 기계나 마찬가지로 텔레비존도 역시 양면에 날이 있는 칼이다. 이 문명의 이기로 인하여 우리는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넓고 신비스러운 세계에 접하고 지식을 얻게 되었다. 한편 이 ‘바보상자’에 매료되어 내 힘을 들여서, 내 발로 걸어다니며,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지는 체험의 가치를 경시하고 다른 사람의 판단과 선택된 정보에 의존하는 안일함을 선호하게 되었다. 가상의 사파리에 비해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게임 드라이브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직접 보고 느꼈다. 파란 보석처럼 어둠 속에서 한 순간 강렬하게 빛을 발하는 짐승들의 눈. 잡목 숲 속에서 무서움도 없이 혼자 밤을 지새는 쿠두.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하나라도 더 보려고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든 우리의 열정. 그러한 체험은 거실 ‘바보상자’ 앞에 앉아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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